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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역사 27) _ 촬영장소 및 스튜디오, 상영장소

by 멍뭉이헤븐 2023.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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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촬영장소 및 스튜디오

이 기간 동안 미국의 영화들은 주로 미국 동부 해안 지역에서 제작되었고, 시카고에 1~2개의 지부가 있었으며 몇몇 영화사들은 미국 서해안이나 심지어 해외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뉴욕 시는 3개의 주요 미국 영화사들의 본사가 있었다. 에디슨은 브룽크스에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었으며, 바이오그래프 사와 바이타그래프 사는 각각 브루클린, 뉴욕 4번가 맨해튼 연예 산업 지역 중심부에 스튜디오를 두었다. 솔랙스 Solax 사와 미국 파테 사 등의 다른 영화사들은 뉴저지 주 포트 리의 허드슨 강 건너편에 스튜디오를 두었고, 이곳은 뉴욕에 기반을 둔 많은 회사들의 주요 촬영지였다. ‘대열차 강도’(에디슨, 1903)는 이 주변에서 촬영된 수많은 ‘저지 Jerjey’ 서부극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특정 장소가 지나치게 자주 이용되었기 때문에 당시의 일화 중에는, 2개의 회사가 한 번은 같은 정문을 이용하면서 포트 리의 울타리 양쪽에서 촬영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시카고에는 셀리그 Selig 스튜디오와 에서네이 Essanay 스튜디오, 조지 클라인 배급사 등의 본사가 있었다. 많은 스튜디오들은 겨울에 우수한 촬영지와 촬영 조건을 이용하고자 캘리포니아에 직원들을 파견했으며, 셀리그 스튜디오는 일찍이 1909년에 그곳에 영구적인 스튜디오를 세웠다. 그러나 로스앤젤레스는 1차 대전 전까지는 미국 영화 산업의 중심지는 아니었다.

2) 상영장소의 변화

1903년을 전후한 영화 거래소film exchange의 증가는 배급 방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는 다시 상영 방식의 급격한 변화를 야기했다. 1906년부터 하나씩 등장하기 시작한 니켈로디언과 같은 영구적인 상영 장소의 급증은 영화 산업을 좀 더 수익성이 있는 사업으로 변모시켰으며 다른 사람들이 에디슨, 바이도그래프, 바이타그래프 등의 제작사에 참여하는 것을 부추겼다. 이때만 해도 영화 제작사들은 영화를 배급업자에게 대여하기보다는 직접 판매했다. 이것은 상영 장소마다 관객을 바꾸었던 순회 흥행사들에게 유리했지만 상설 상영 장소의 생성을 저해했다. 같은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관객을 계속 끌어들임에 따라 상설 상영 장소는 프로그램의 빈번한 교체를 필요로 했는데, 이를 위해 많은 수의 영화를 직접 구매한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돈이 많이 들었다. 영화 거래소가 제작사로부터 영화를 구매한 후 상영 업자에게 대여함으로써 이 문제는 해결되었고, 영구적인 상영을 가능케 했으며 영화를 즐기는 계층을 증가시켰다. 또한 영사기의 향상은 상설 상영 장소의 증가를 가져왔는데, 상영업자는 영사기 관련 기술자를 공급하는 영화 제작업자들에게 더 이상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다.

니켈로디언- 초기에 이런 극장의 입장료가 5센트였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 이 거리의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도시 고객들을 ‘5센 트위 매력’으로 사로잡음에 따라 1908년 이 새로운 매체는 전에 없는 성황을 누렸다. 그러나 영화 산업 자체는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었다. 서로 인접해 있는 니켈로디언이 같은 영화를 확보하려고 경쟁하거나, 실제로 같은 영화를 빌려서 같은 관객을 두고 경쟁하는 상황이 생겼고, 부도덕한 영화 거래소들은 너무 오랫동안 대여되어 비 오는 듯한 긁힘으로 이미지가 상처 난 영화들을 아주 쉽게 상영업자들에게 공급할 수 있었다. 영화 거래소와 상영업자들은 이제 영화 제작사에서 산업의 경제적 통제권을 빼앗을 수 있을 정도로 위협적이 되었다. 게다가 새로운 매체의 급속한 성장과 노동자와 이민자들에게 끼치는 그 영향에 놀란 공공 기관과 민간 개혁 조직들은 영화에 대한 검열과 니케로디언에 대한 단속을 요구했다.

1908년 후반 에디슨 사와 바이오그래프 사가 주도하는 제작사들은 영화특허권회사Motion Picture Patent Company(MMPC). 혹은 널리 알려진 대로 트러스트 Trust를 조직함으로써 산업을 안정시키고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려고 했다. 트러스트는 주요 미국 영화 제작사와 미국 내 외국 배급사를 포괄하는 것으로 산업에 대한 과점적 통제권을 행사하려는 의도를 가졌다. 에디슨 사와 바이오그래프 사를 위시하여 미국 제작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바이타그래프, 멜리에스, 파테, 클라인, 코네티컷 주에 기반을 둔 칼렘 Kalem, 필라델피아 시에 기반을 둔 루빈 Lubin 등의 회사들이 트러스트에 참여했다. MMPC는 생필름 film stock, 카메라, 영사기 등 대다수 에디슨 사와 바이오그래프 사가 소유하고 있는 특허권을 공동 관리함으로써 통제권을 발휘했다. 바이오그래프 사 창설 이래 기나긴 법적 소송을 벌여 왔던 두 회사는, 당시 미국 제작 스튜디오 가운데 가장 수익이 떨어지는 회사들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들이 제안한 해결책 때문에 트러스트의 이익 가운데서 가장 큰 몫 lion`s share를 요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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