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의 역사 10) _ 영상비, 영사, 광원의 영향

by 멍뭉이헤븐 2023. 5. 4.
반응형

(1) 영상비

35mm 필름의 프레임의 크기와 형태는 대략, 너비 23mm(1인치 미만), 높이 18mm(0.75인치)로 무성 영화 시대를 통틀어 사실상 거의 변하지 않았다. 프레임의 영역을 이렇게 정한 것은 필름 1피트에 16개의 프레임이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것 또한 오늘날까지 변하지 않고 표준으로 이어져 왔다. 영사될 때 스크린상의 영상비는 1.31 내지 1.38대 1이었다. 사운드의 도입으로 프레임의 크기는 사운드 트랙을 포함하기 위해 약간 변했지만 1950년대에 와이드스크린이 출현하기 전까지 영상비는 대략 4대 3으로 거의 비슷하게 유지되었다. 무성 영화와 초기 유성 영화 시대에 영사 이미지의 크기와 형태를 바꾸어 보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다.

예를 들어 무르나우의 ‘터부(1931)’경우처럼, 정방형의 영사 이미지를 얻기 위하여 종종 프레임 측면의 일부가 가려졌다. 1927년에 프랑스의 앙리 크레티앵은 이 페르고나르Hypergonar라 알려진 최초의 애너모픽 anamorphic 시스템을 선보였다. 여기에서 이미지는 프레임 안에 좀 더 넓은 그림을 담아내기 위해서 카메라 렌즈에 의해 [압축]되었다가 와이드 스크린에 영사되면서 영사기에서 [팽창]되었다. 이것은 1950년대에 상업적으로 이용되었던 시네마스코프 CinemaScope와 다른 초창기 애너모픽 시스템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또 다른 실험으로 매그너스코프 Magnascope(1926)가 있었는데 커다란 스크린을 채우기 위한 광각 영사 렌즈와 ; 여러 대의 영사기를 연계시킬 수 있는 장치를 사용했다. 1900년에 프랑스의 라울 그리무앵-상송은 관객을 완전히 둘러싸는 360도 파노라마를 산출하기 위해 10개의 70mm 영사기를 교묘하게 배치했다. 더 유명한 것(마찬가지로 일회성으로 끝났지만)은 아벨 강스의 ‘나폴레옹(1927)’의 유명한 ‘3폭’ 시퀀스에서 사용된 폴리비전 시스템이었다. 여기에서는 단일한 이미지를 창출하기 위해 3개의 필름이 서로 연이어 배치되어 동시에 영사되었다.

[ 아벨 강스 감독의 나폴레옹(1927) ]

;

;

;

(2) 영사

초창기부터 사용된 보통의 영사 방식은 영사기를 영사 공간의 뒤쪽에 배치하고, 관객의 머리 너머로 원뿔 모양을 형성하는 빛을 통해 이미지를 스크린에 투영하는 것이었다. 때때로 대안적인 공간 배치가 시도되었다. 예를 들어 1909년 게르만 메스트 German Mester 사는 거울들을 복합적으로 활용한 시스템을 이용하여 극장 바닥 아래쪽에 설치된 영사실에서 회사에서 개발한 ‘알라바스트라 Alabastra’ 컬러 필름을 얇은 차단막에 투영했다. 스크린의 뒤쪽에서 투영하는 방식 또한 가능했는데 이런 과정(후면 영사 back-projection로 알려져 있다.)은 상당한 공간이 필요했으며, 대중적인 상영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이것은 유성 영화 시대에 들어서서 특수 효과 방식으로 이용되었는데, 배우들이 기존에 촬영된 필름을 후면 영사하여 스크린에 생긴 풍경 앞에서 연기하도록 한 후 그것을 촬영하는 과정에 사용되었다.

;무성 영화 시대의 영사기는 손으로 조작되든 전기 동력으로 움직이든 다양한 속도로 작동되었는데, 카메라의 속도에 따라 영사기의 속도를 조정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런 이유에는 촬영 당시 이용할 수 있는 빛의 양, 필름의 감도, 기록되는 연기의 성격 등 수많은 요인에 따라 그 촬영 속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의 움직임을 스크린상에서 ‘자연스럽게’ 보이게 하기 위해 영사 기사들은 1920년 전까지는 필름을 대개 초당 14 프레임과 18 프레임 사이에서 다양한 속도로 돌렸다.(상대적으로 느린 영사 속도에서 생기는 영향이 있는 깜빡임 현상 flicker effect은 각 프레임에 대해 세 번 열리고 닫히는 3 날 셔터 three-bladed shutter의 도입으로 세기 초에 제거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영사의 평균 속도는 빨라져 이 시기의 말엽에는 초당 24 프레임에 이르게 되었고, 유성 영화의 표준이 되었다. 이보다 더 빠르거나 느린 영사 속도는 때때로 컬러 영화 실험이나 몇몇 아마추어 장비에서 사용되었다. ;

;

(3) 광원의 영향

;영사의 질은 주로 이용되는 광원의 영향을 받았다. 전기 아크등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전 영사기용 광원을 만드는 통상의 방법은 강렬한 백광이 될 때까지 석회나 비슷한 물질을 태우는 방식이었다. 이 방법(라임라이트limelight로 알려져 있다)의 효율성은 석회를 태우기 위해 사용되는 연료의 특성과 품질에 달려 있었다. 통상의 연료들은 석탄 가스와 산소 혹은 에테르와 산소의 혼합물이었다. 아세틸렌 또한 시도되었지만 불빛이 약하고 불쾌한 냄새가 났기 때문에 얼아 안가 사용되지 않았다.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