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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역사 11) _ 제작에서 상영까지

by 멍뭉이헤븐 2023.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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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에서 상영까지

무성 영화 시대에 얼마나 많은 양의 영화가 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아마도 알려질 수가 없을 것이다) 대략 그 숫자는 15만 편이며, 이 가운데 2만에서 2만 5천편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산업의 급성장과 함께 필름은 많은 숫자로 복사되었다. ‘백인노예무역 2 Den Hvide Slavehandel Ⅱ’(아우구스트 블롬, 1911)의 경우 덴마크 영화사 노르디스크Nordisk는 세계 배급용으로 260벌 정도를 복사했다. 다른 한편으로 배급사들의 카탈로그에 실린 초창기 미국 영화의 다수는 많아야 2벌 이상 팔리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어떤 경우에는 수요의 부족으로 전혀 복사본 프린트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영화는 그 시작부터 국제적인 산업이었기 때문에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종종 서로 다른 버전으로 보내졌다. 두 대의 카메라를 나란히 배치하여 똑같은 장면을 동시에 촬영할 수 있었기 때문에 2개의 다른 네거티브 필름이 생길 수도 있었다. 삽입자막intertitle은 서로 다른 언어로 촬영되어 외국의 영화 배급자에게 필름의 프린트 혹은 듀프 네거티브duplicate negative와 함께 보내졌다. 때때로 자막들의 경우, 각각 단 한 프레임만을 제공하기도 했는데, 수입된 국가나 배급 지역에서 필름을 복사하는 과정에서 그 프레임을 온전한 길이만큼 길게 복사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영화들 ‘반짝’ 자막이 뜨거나 아예 자막이 없는 상태로 남아 있다. 때때로 각국 국민의 구미에 맞게 영화 엔딩만 별도로 다르게 제작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동유럽에서는 ‘러시아적’ 혹은 비극적 엔딩이 선호되었던 반면, 미국 관객은 해피 엔딩을 기대했다. 화려한 극장의 흥행용으로 컬러 프린트를, 그리고 경제 규모가 열악한 지역용으로 좀 저렴한 흑백 프린트를 만드는 것 또한 일반적 현상이었다. 마지막으로 자국과 외국의 검열제도 때문에 종종 영화의 일부가 삭제되거나 수정이 가해졌고, 특히 미국의 많은 영화는 주립 혹은 시립 검열 위원회들의 검열 관행에 차이가 많았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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