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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역사 19)_ 양식, 개별 숏의 연결, 초창기 내러티브 스타일

by 멍뭉이헤븐 2023.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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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식

영화 감독의 출현으로 분명하게 설명이 되겠지만, 영화 텍스트의 변화는 종종 그에 따른 제작 과정의 변화를 수반한다. 그러나 초창기의 영화는 실제로 어떠했을까? 일반적으로 말해 1907년까지 영화 제작자들은 카메라 전면의 사건pro-filmic event(그 측면이나 뒤쪽이 아닌 오직 카메라 전면에서 벌어지는 장면)의 공간적 요소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즉 보전하면서 개별적인 숏에 온통 신경을 썼다. 그들은 영화적인 개입을 이용한 시간적 연관성, 혹은 극적 인과성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다. 이러한 롱 숏 스타일은 종종 타블로 숏, 프로시니엄 아치 숏이라 언급되었으며, 후자의 명칭은 극장의 중앙 첫 번째 열에 앉은 관객이 갖는 시점과 같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의미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1907년 이전의 영화는 비록 타블로 숏이 당시 그림 엽서와 입체 그림처럼 다른 매체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시점을 그대로 따른 것이었지만 영화적이기보다는 연극적이라는 비난을 종종 받았다. 사실 초창기의 영화 제작자들은 연극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시각적 자료에서 영감을 가져왔다.

(2) 개별 숏의 연결

개별 숏에 1차적으로 신경 쓰면서 초창기 영화 제작자들은 숏 사이의 연결에 대해서는 분명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한 숏을 다음 숏과 연결시키기 위한 관습과 연속적인 선형적 내러티브를 구성하기 위한 관습 등을 정교하게 만들지 않았으며, 관객이 시공간적 맥락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관습들 또한 그러했다. 그러나 비록 1902년까지는 드물었지만 이 기간중에 제작된 영화 가운데는 복수 숏multi-shot 영화들도 있었다. 사실 1907년 이전의 시기는 2개의 하부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즉, 1894년에서 1902년, 혹은 1903년까지의 대다수 영화들은 하나의 숏으로 구성되었고, 프랑스에서 말해지는 기록 영화, 혹은 오늘날 우리가 다큐멘터리라 부르는 것들이었다. 1903년에서 1907년 사이에는 그 숏들이 인과적, 시간적 관계로 구성된 단순한 내러티브를 가진, 복수 숏의 픽션 영화들이 점차 지배적이 되었다.

(3) 초창기 내러티브 스타일

초창기 영화 제작자들은 내러티브 스타일에 있어 매우 자의식이 강한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1894년과 1907년 사이의 많은 영화들은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낯설어 보인다. 이들은, 그들 이후의 영화 제작자들이 그렇게 하게 되는 것처럼 영화적 관습에 따라 자신의 현존을 없는 것처럼 가장하기보다 관객을 상대로 마치 흥행 장소에서 자신의 물건을 크게 선전하는 사람들인 양 영화를 만들었다. 사실주의 소설과 할리우드 영화가 취하는 전지적 화자의 시점과 달리 초창기의 영화들은 내러티브를 단일 시점으로 제한했다. 이런 이유에서 초창기 영화는 관객과 스크린 사이의 관계가 지금과 달랐다. 관객은 이야기보다 시각적 스펙터클로서의 영화에 흥미를 느꼈다. 스펙터클에 대한 초창기 영화들의 강조가 너무 두드러졌기 때문에 많은 영화학자들은 톰 거닝의 구분을 채택해 왔다. 톰 거닝은 ‘볼거리로서의 영화’였던 초창기 영화와 ‘내러티브 통합의 영화’라고 할 수 있는 과도기적 영화를 구별했다.(거닝, 1986). ‘볼거리로서의 영화’에서 관객은 영화적 관습에 따른 해석을 통해서가 아니라,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공간적 일관성에 대한 지식, 그것의 시작과 끝이 알려진 사건의 통일성, 대상에 대한 지식 등 카메라 앞에 놓인 사건과 관련된 이미 파악하고 있는 정보를 통해 의미를 창조했다. 반면, 과도기 동안에 영화는 영화적 관습의 지식에 근거를 두고, 스토리를 이어 맞추는 관객을 요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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