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창기 영화의 형태
초창기 영화의 프로그램은 다큐멘터리 actuality, 코미디 단편, 단독적인 스토리, 연작영화 serial에피소드, 경우에 따라 속임수 영화 trick fillm와 애니메이션 등 이것저것이 혼합되어 있었다. 장편 길이의 내러티브가 그 프로그램의 중심적인 것이 됨에 따라 영화의 다른 유형들은 부차적인 것으로 전락하거나 혹은 대안적인 상영 수단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그런 종류 영화의 발전을 실제로 저해하기도 했지만 그 차별성을 강화시키는 경향도 있었다. 애니메이션의 제작은 일반 영화 제작과는 구분되는 분야가 되었으며 일반적으로 메이저 스튜디오에서의 외부에서 수행되었다. 이것은 또한 연작 영화에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프랑스에서 루이 포야드의 어떤 연작 영화들은 프로그램 전체를 채울 수 있었고 간간이 장편 길이의 애니메이션 제작이 시도되기도 했지만 애니메이션과 연속극은 점차 뉴스 영화 newsreel와 더불어 장편 길이 영화가 주가 되는 프로그램에 부가적인 단편으로 상영되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초창기 영화들에서 시작된 장르 가운데 단편과 장편 형식 양자에 있어서 계속적인 발전상을 보인 것은 사실상 슬랩스틱 코미디가 유일했다. 스탠 로럴과 올리버 하디를 포함한 대다수 무성 영화 코미디언들이 무성 영화 시대에 거의 대부분 단편 영화를 중심으로 활동 영역을 굳혔던 반면,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은 1920년대 초기에 성공적으로 장편으로 전환했다.
(2) 번성했던 영화의 종류
;[무성 영화] 장에서는 애니메이션, 코미디, 연작 영화 등 1920년대 장편 영화와 더불어 계속해서 번성했던 모든 종류의 영화를 살펴볼 예정이다. 또한 시간에 지남에 따라 점차 뚜렷한 차별성을 획득해 간 사실적 영화, 혹은 다큐멘터리가 다루어지며 주류 영화와 나란히(때로는 반대로) 진행된 아방가르드 avant-garde영화의 부상이 검토된다. 다큐멘터리와 아방가르드 영화는 때때로 상업적 성공을 달성했다.(로버트 플라티어의 ‘북극의 나누크 Nanook of the North’는 파리에서 수개월 동안 상영되었고 장 엡스탱과 제르멘 뒬라크 등 프랑스 인상주의 영화 제작자들의 작품들 또한 상당한 관객을 확보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다큐멘터리와 아방가르드 영화는 비상업적인 형태였으며 주류 영화와 구별되는 가치와, 상업적인 관점으로는 산정할 수 없는 정치적, 사회적인 기능을 가졌다. 아방가르드 영화는 1920년대 모더니즘 예술 운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으며, 특히 프랑스(만 레이, 마르셀 뒤샹, 페르낭 레제 등과 함께)는 물론 독일(한스 리히터)과 소련 등에서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런 모더니즘적 추동력은 1920년대(소련의 지가 베르토프와 독일의 발터 루트만)는 물론 그 후에도 다큐멘터리에 활력을 가져다주었다.
(3) 영화를 개발하고 유지했던 주요 국가들
;무성 영화 시대에 지리적으로 차별되는 영화를 개발하고 유지했던 지역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국가는 프랑스, 독일, 소련이었다. 이들 국가 가운데 프랑스는 전쟁이 야기한 위기와 전후 시기의 경제적인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가장 오래 지속된 연속성을 유지했다. 대조적으로 1차 대전 이전에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했던 독일은 1919년 표현주의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Das Cabinet des Dr.Caligari’로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으며,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를 통해 다양한 예술적 에너지를 새로운 영화적 형태로 결집하는 데 성공했다. 이보다 눈부셨던 현상은 1917년 혁명 이후 소련 영화의 출현이다. 새로운 소련 영화는 과거와 단절했으며 전전 러시아 영화의 양식은 혁명을 피해 서방으로 탈출한 많은 망명자들에 의해 지속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세계 국가들의 영화 관련 장에서는 최근에 재발견된 혁명 이전의 러시아 영화, 소련 영화 그리고 러시아 망명자의 영화 등 세 가지 사항이 별도로 다루어진다.
이들 국가 이외에 몇몇 국가의 영화는 1부에서 별도의 지면을 통해 다루어질 가치가 있다. 영국은 무성 영화 시대에 흥미롭지만 상대적으로 특징이 작은 영화 역사를 이루었다. 이탈리아는 전쟁 발발 바로 전에 잠시 세계적인 명성을 날렸다. 그 가운데 주도적이던 덴마크와 스웨덴을 포함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무성 영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일본의 경우, 극예술을 포함하여 전통적인 형태의 예술에 바탕을 두고 영화가 발전했으며 서구의 영향에 서서히 반응했다. 또한 독특한 현상으로 양차대전 사이의 시기에 동부와 중앙 유럽에서 꽃을 피운 국적을 초월한 이디시 Yiddish영화에 지면이 할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