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전의 기술_ 필름, 텔레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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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역사는 한 번의 대폭발로 시작되지 않았다. 성운처럼 불투명한 영화 이전의 상황에서 ; 순수한 영화를 분리해낼 수 있는 어떤 단일 사건- 1891년 에디슨이 특허를 획득한 키네토스코프의 발명이든 1895년 뤼미에르 형제의 첫 유료 영화 상영이든-은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사건들의 연속체라 할 만한 것이었다. 그 연속체는 이미지들을 연속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목적의 초기 실험과 장치들(1798년 에티엔 가스파로 로베르송의 ‘판타스마고리아 Phantasmagoria’에서 1892년 에밀 레노의 ‘팬터마임 장면 Pantomimes Lumineues’에 이르기까지)로 시작하여 1890년대에 영화라 인정되는 장치들의 출현뿐만 아니라 전자 이미지 창조의 선구적 역할을 했던 것들이 포함된다.
텔레비전 형태와 같은 장치로써 이미지를 전송하고자 했던 최초의 실험들은 사실상 영화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아드리아노 데 파이바는 1880년 이런 주제에 관한 첫 연구서를 출판했고, 조르주 리뉴는 1909년 사실상 잉런 전송을 달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특정 영화 이전의 기술들은 영화가 오락과 교육의 새로운 대중 매체로서 확립되는 1900년과 1905년 사이에 영화와 결합하여 계속 사용되었다. 움직임 효과를 갖는 한 등 슬라이드는 계속 이어져 영화 상영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환등기magic lantern, 영화 film, 텔레비전 등은 개별 영역들(그리고 연구 분야들)로 구분되기보다는 단일한 진화 과정의 일부로서 함께 속해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기술적인 측면과 그 확산 방식의 측면은 물론, 발생한 시기의 관점에서도 구별될 수 있다. 한 등 프로그램이 20세기 초에 점진적으로 영화 프로그램에 그 자리를 양보했으며 텔레비전은 20세기 후반기가 되어서야 온전한 형태로 출현했다. 이러한 연결선상에서 영화를 다른 것과 구별 짓는 특징은 한편으로는 그 기술적인 기반(연속성의 환영을 산출하면서 빠르게 연이어 투영되는 사진적인 이미지들)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대규모 대중오락으로 널리 활용된 측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