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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역사 7)_ 규격, 생필름의 크기, 필름 규격의 절대강자

by 멍뭉이헤븐 2023.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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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규격 ;

;셀룰로이드 필름이 35mm 너비(표준 치수) 최초로 1892년 에디슨이 자신의 키네토스코프에 채용했던 방식이다. 키네토스코프는 한 번에 한 명의 관람자가 짧은 필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치로 이것의 상업적 성공은, 움직이는 이미지를 재현하는 다른 후속 기계들이 35mm를 표준적인 규격으로 채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관행의 유지에는 이스트먼 사가 상당한 역할을 했는데 당시 생산하는 사진 필름의 너비가 70mm였기 때문에 단순히 그 중간을 가르면 필요한 필름이 생겼다. 35mm 필름에서 각 프레임 양쪽에 대략 직사각형 모양의 이송 구멍 perforation이 4개 있는 이유 또한 키네토스코프의 기계적 구조에 기인했는데, 이 구멍은 카메라와 영사기에서 필름을 끌어당기는 데 이용되었다. 19세기 말엽에 다른 영화 개척자들은 다른 유형을 사용했다. 예를 들면 뤼미에르 형제는 프레임 양쪽에 단 하나의 원형 구멍을 사용했다. 그러나 산업적 표준으로 채택되어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은 에디슨의 방식이었다. 대략 너비 1인치, 높이 0.75인치, 즉 35mm 프레임의 표준적인 크기와 형태 역시 에디슨의 회사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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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에디슨이 발명한 시네토스코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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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필름의 다양한 크기

;비록 이것들이 나중에 표준적인 것이 되었지만 생필름 film stock의 크기에 대한 다양한 실험은 영화 초창기는 물론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1896년 프레스트위치 Prestwich사는 60mm 필름을 생산했으며, 그 견본이 런던의 국립영화 텔레비전보관소 National Film and Television Archaive에 보관되어 있다. 똑같은 너비의 필름(이송 구멍의 형태는 다르다)이 프랑스의 조르주 드므니에 의해 사용되었다. 미국의 베리스코프 Veriscope 사는 63mm의 필름을 도입했으며, 이런 형태의 필름이 현재까지 남아 있는데 1897년 코벳과 피츠 시먼스의 역사적인 권투 챔피언 타이틀전을 기록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루이 뤼미에르는 너비 60mm, 높이 45mm의 이미지 영역을 갖는 70mm 필름을 실험했다. 이들의 모든 체계는 기술적인 문제, 특히 영사에서 문제가 있었다. 비록 무성 영화 시대가 끝날 때까지 실험들은 계속되었지만 65mm와 70mm 같은 넓은 크기의 필름은 1950년대 후반까지는 현실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미지를 크게 하려는 어떤 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미지를 축소하고 비전문가들에게 적절한 장비들을 생산하려는 시도들이었다.

;1900년 프랑스의 고몽 사는 프레임 중간에 단 하나의 이송 구멍이 있는, 15mm 필름을 사용하는 휴대용 카메라인 [크로노 드 포슈]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2년 후 영국의 워릭 무역회사는 아마추어용으로 17.5mm를 도입했다. 이것은 뤼미에르의 첫 번째 기계 장치처럼 카메라, 인화기, 영사기 모두에 사용될 수 있는 비오캄 Biocam이라 불리는 기계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1920년대에 독일의 에르네만 사와 프랑스의 파테 사가 채택했다. 한편 파테 사는 1912년에 불연성 디아세테이트 베이스에 28mm 필름을 사용하고, 이미지 영역이 35mm 필름보다 약간 작은 시스템을 도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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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필름 규격의 절대강자

;그러나 아마추어용 필름 규격의 절대적인 강자는 1920년 이스트먼 코닥 사가 개발한 불연성 베이스의 16mm였다. 코다스코프Kodascope라 알려진 초기 형태에서는 카메라에 사용된 원래의 필름에서 네거티브 필름 단계 없이 곧바로 포지티브 프린트를 얻는, 반전의 원리가 이용되었다. 코닥 사는 1923년 16mm 필름을 시장에 내놓았으며, 같은 시기 파테 사는 불연성 9.5mm 필름인 파테-베이비를 선보였다. 9.5mm는 오랫동안 16mm 필름의 무서운 경쟁자였으며, 이후 한동안 아마추어 영화 제작 영화의 영사와 본래 35mm로 제작된 시사용 영사 크기로 살아남았다.

;또한 연이어 노출될 수 있는, 그 평행선 방향으로 갈라지는 필름을 사용하는 보다 이국적인 형태가 있었다. 이들 가운데 에디슨의 홈 키네토스코프만이 상업적으로 의미 있게 사용되었다. 이는 이미지 너비가 5mm가 약간 넘으며, 그 각각이 일련의 구멍들에 의해 분리되는 3개의 띠로 나눠지는 22mm 필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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