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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역사 32)_ 내러티브의 시작, 편집기법&카메라 촬영의 발전

by 멍뭉이헤븐 2023.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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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러티브의 시작

1907년경 과도기 시기의 영화는 한 차례 ‘위기’를 겪었다. 업계 신문에는 내러티브의 명료성이 부족하다고 질타하는 기사가 실렸으며 상영업자들은 영화과 관객에게 좀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도록 별도의 해설자를 두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그 당시 영화는 볼거리로서의 영화, 곧 시각적 즐거움을 강조하는 지점과 ‘내러티브 통합의 영화’, 곧 스토리텔링의 지점 사이에 놓여 있었으나 아직 내적으로 연결성이 있는 내러티브의 구축에 필요한 관습들은 확립되지 않았다. 1907년, 혹은 1908년에서 1917년에 이르는 과도기적 영화 시기 동안에 조명, 구도, 편집 등 모든 것이 점차 관객이 스토리를 따라가는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고려됨에 따라 영화 제작의 모든 형식적 요소들은 내러티브에 종속되었다. 연기 양식, 편집, 삽입 자막의 대사 등을 통해 창조된, 심리적으로 개연성이 있는 인물이 이런 스토리에 통합되었으며 이들의 동기와 행동은 사실적으로 보이며 영화의 개별 숏이나 장면들을 한데 연결시키는 도움이 되어야 했다. 이렇게 풍부하고 깊이 있는 개연성 있는 등장인물을 따른 것으로 멜로드라마와 보드빌 코미디에서 가져왔던 이전 시기의 일면적이고 전형적인 등장인물과는 대조를 이뤘다.

편집 기법의 발전

편집 기법의 발전과 카메라와 배우 사이의 거리가 줄어드는 것은 과도기 시기의 영화와 그전 시기의 영화를 구별시키는 확실한 차이였다. 배우의 신체 전체는 물론 배우의 머리 위와 발아래 공간까지 담아내는 타블로, 혹은 프로시니엄 아치 숏은 초창기 영화의 특징이었다. 그러나 과도기 시기의 초기에 이르러 바이타 그래프 영화사는 소위 ‘9피트 라인’을 이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카메라에서 9피트 떨어진 거리에서 장면을 연출하는 것으로 배우를 발목 위에서부터 보여 주었다. 같은 시기에 프랑스에서는 파테 영화사와 그 영향하에 있었던 필름 다르 Film d`art 영화사와 스카글 SCAGL 영화사 등의 다른 영화사들도 9피트 라인을 채택했다. 1911년에 이르러 카메라는 피사체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스리쿼터 숏 three-quarter shot을 썼는데, 이것은 과도기 시기와 무성 영화 시기의 주도적인 촬영 거리였다. 카메라가 배우를 향해 가까이 다가선 것에 더하여, 영화 제작자들은 또한 배우들이 카메라를 향해 좀 더 가까이 움직이도록 했다. 과거 추격 영화들에서 배우들이 카메라를 향해 가까이 다가온 후에 숏 밖으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더러 있었으나 과도기 영화 시기에 이런 방식은 표준적인 것으로 확립되었다. 이것은 강도들이 담을 따라 미디엄 클로즈업의 화면 크기로 보일 때까지 카메라 쪽으로 살금살금 걷는 ‘피그 앨리의 총병들 The Musketeers of Pig Alley’(그리피스, 1912)의 한 숏에서처럼 극적 효과를 의도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활용되었다.

카메라 촬영의 발전

연기자와 카메라 사이의 거리가 줄어든 것은 관객이 배우를 더 잘 볼 수 있으며 스타 시스템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지만 또한 등장인물의 개성적인 차별성과 얼굴 표현을 점점 강조하는데도 기여했다. 편집 또한 심리적으로 격렬한 순간을 강조하고 등장인물의 사고와 감정을 외면화하는 그런 목적에 맞게 발전했다. 이미 스리쿼터 숏을 통하여 관객이 전에 없이 배우의 얼굴을 분명하게 볼 수 있었으나 영화 제작자들은 종종 절정의 순간을 위해 훨씬 더 근접한 숏을 연결했다. 이것은 초기의 영화인 ‘대열차 강도’에서처럼 단순히 충격적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감정에 대한 관객의 감정 이입을 좀 더 강화하고자 고안되었다. 예를 들어서 ‘론데일 교환원 The Londale Operator’(그리피스, 바이오그래프, 1911)에서 강도들은 전신 기사(블란치 스위트)를 위협하며 그녀의 사무실에 침입하려 한다. 그녀가 필사적으로 구조 요청 전신을 보내는 사이, 영화는 스리쿼터 숏에서 미디엄숏으로 바뀌고 그녀가 공포에 떠는 모습을 좀 더 가깝게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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