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역사 _ 초창기
(1)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영화 :
영화사의 첫 30년은 전례 없는 팽창과 성장의 역사였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뉴욕, 파리, 런던, 베를린 등 몇 안되는 세계의 대도시에서 싸구려 오락물로 시작한 ‘영화’는 빠르게 세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영화는 상영될 때마다 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면서 다른 오락 매체를 대체해 나갔다. 관객층이 성장해 나감에 따라 상영되는 장소 또한 증가했으며, 결국 1920년대에는 규모와 화려함에 있어 연극 극장과 오페라 하우스와 경쟁을 벌이는 거대한 [영화 궁전picture palace]이 생겼다. 다른 한 편으로 영화 자체는 초창기에 편당 겨우2분 정도의 짧은 [오락물]에서 오늘날까지 세계의 영화관에서 주도적인, 장편 길이로 점차 발전하게 되었다. 비록 프랑스, 독일 그리고 영국 출신의 개척자들 모두가 영화의 [발명]에 기여한 바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영국과 독일은 영화의 전세계적인 활용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그 역할이 크지 않았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 일본, 라틴 아메리카 등지에서 영화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고, 가장 열렬하게 새로운 발명품을 세계 전역에 전파한 국민들은 프랑스 인들이었으며 미국이 그 뒤를 이었다.
(2) 영화 발전에 주도적인 국가들 :
영화의 예술적 발전의 측면에서도 비록 제1차 세계 대전 전까지 이탈리아, 덴마크, 러시아 등도 어느 정도 역할을 했으나 가장 주도적인 기여를 했던 국가는 역시 프랑스와 미국이었다. 종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입증된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은 지금까지도 그렇지만 단일 규모로 가장 큰 영화 시장이었다. 자신들의 시장을 보호함과 동시에 활발한 수출 정책을 펴가면서 미국은 제1차 세계 대전 직전에 이르러 세계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했다. 전쟁 기간 동안 다른 유럽 국가들은 쇠약해졌던 반면 미국은 산업적인 통제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새로운 기술을 개척하면서 계속 발전해 나갔다. 한편 미국의 경우, 영화 제작의 중심은 서쪽으로, 즉 할리우드로 옮겨졌으며, 현재까지도 그러하지만 1차 대전 이후 세계 시장을 가득 채운 영화들은 이 새로운 할리우드에서 생산된 것들이었다. 할리우드 영화의 쇄도에 직면하여 그 경쟁상대가 될 상대적으로 그 명성을 잃기 전까지는 스웨덴 영화가 ‘빅토르 셰스트림’의 강력한 대하 서사극과 ‘마우리츠 스틸레르’의 위트있는 코미디 등의 유명세와 함께 짧은 영광의 시대를 구가했다. 심지어 프랑스 영화도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다. 유럽에서는 오직 독일만이 산업적으로 활기를 회복했으며 신생 소련과 일본에서는 외국과의 상업적 단절 상태에서 영화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할리우드는 산업적 측면과 예술적 측면에서 모두 주도권을 확보했다. 사실 이 두 측면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는 다른 나라 영화들보다 잘 구성된 이야기, 놀라운 기술적 효과, 그리고 영화 연기에 새로운 차원을 가져온 스타 시스템 등을 통해 호소력을 가졌다. 할리우드는 자체적인 자원을 통해 주도권을 잡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현재 혹은 미래의 경쟁에서 계속 우월한 지위를 확보하고자 유럽의 예술가와 기술 혁신을 끌어들였다. 셰스트림, 스틸레르, 그리고 두 사람이 보호하던 그레타 가르보를 스웨덴에서 데려왔으며, 에른스트 루비치와 F.W. 무르나우는 독일에서 유인해 왔다. 폭스 영화사는 나중에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가 되는 기술을 포함하여 많은 특허권을 확보했다.
(3) 미국 이외의 국가들의 상황 :
미국 이외의 다른 국가들은 한편으로는 할리우드로부터 배우는 것들을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할리우드가 제공하기 어려운 욕구들에 부합하는 영화 상품에 대한 관객이 계속해서 존재했기 때문에 명맥을 겨우 유지해 나갔다. 대중 관객과 더불어 좀 더 예술적으로 모험적인 영화, 혹은 영화 이외의 영역과 연관되는 영화를 찾는 관객이 증가했다. 그 연결 고리는 예술적인 아방가르드와 정치 조직, 특히 좌파 성향의 정치 단체와 함께 형성되었다. 미학적 운동이 출현하고 다른 예술 영역의 성향들과 연계가 되었다. 이런 흐름은 경우에 따라 모방적인 성격을 가졌으나 소련에서 영화는 서구에서 널리 인정되고 있는 바대로 전체적인 예술 발전에 선도적 역할을 했다. 무성 영화 시대가 끝나갈 무렵 영화는 [제7의 예술]로서뿐만 아니라 산업적으로 확고한 지위를 확보했다.